p. 45~46 성폭력 예방을 다룬 부분은 더 가관이다. 고등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데이트 성폭력 '예방' 수칙으로 '평소 자기 의사를 분명히 제시한다, 남성 우월적이거나 공격적인 남성과는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 상대를 잘 모르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집에 방문하거나 자기 집에 초대하지 않는다' 등을 제시한다. 어이없게도 모두 '잠재적 피해자'가 조심해야 한다는 말투성이다. 무엇이 왜 가해 행위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 의사를 밝히라는 말은 하나마나 한 소리다. 힘의 차이 때문에 자기 의사를 밝히기도 힘들거니와 어렵사리 표현을 해도 쉽게 거부되는 것이 문제임을 왜 모를까?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이 훨씬 많다고 설명하면서 '잘 모르는' 사람 집에 가거나 초대하지 말라는 엉뚱한 예방법을 내놓은 것도 한심하다.
p. 49 틈만 나면 딸아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통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토끼는 잘난 체하다가 경기에 지고 말았죠? 그러니 거북이처럼 열심히 해야 해요"라고 교훈을 정리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는데,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박했다.
"근데 엄마, 져도 되잖아. 왜 꼭 이겨야 해요? 달리기 못할 수도 있지. 놀리는 동물 친구들이 이상해요."
그래, 져도 되지. 이 전래동화의 교훈이 '교만하지 말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일 수 있는데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이야기는 같은데 또 달라졌다. 성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체성, 역할, 선택, 삶은 말 그대로 단 하나뿐인 이야기다. 그 고유한 이야기를 표준이라는 잣대로 옳고 그름,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재단하는 게 옳을까? 재단하려 한다고 가능할까?
p. 59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나는 수많은 아이들이 '잠재적 가해자' 또는 '잠재적 피해자'의 자리가 아니라 '목격자이자 감시자'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성폭력예방교육을 해나가고 싶다. "내가 목격자라는 걸 깨달았다"라며 내게 말을 건네는 친구를 더 많이, 자주 만나고 싶다.
p. 64 '성적 의도를 가진 강제 추행'이라는 언술에는 '성적 의도가 있어야만 성폭력이 성립된다'라는 오랜 통념이 도사리고 있다. 성폭력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로 타인에게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주는 모든 행위를 포괄한다. 여기에서 '성적 의도'는 필수 요건이 아니다. 이 통념을 깨지 못하면 동성 간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도울 수 없게 된다. 되레 피해자가 '남자(여자)끼리 하는 장난인데 예민하게 왜 이래?'같은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실제로 동아리에서 선배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기 만짐이나 폭행을 당해왔지만 관례라 여기며 참다가, 자신이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들을 통솔한다는 명분으로 똑같이 행동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청소년을 만난 적이 있다. 물론 그 친구는 후배들에게 어떤 성적 의도나 욕구도 없었다.
p. 65 강의안을 기획하는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논쟁의 발단은 초등 고학년 또래 성폭력 자료를 준비해온 B 강사가 또래 성폭력을 "친구가 '싫어하는' 성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이었다. 나는 "'싫어하는' 보다 '원하지 않는'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B 강사가 반박했다. "'원하지 않는’은 명확하지가 않아요. 교육 대상 연령이 낮을수록 이해를 돕는 표현을 써야죠. '싫어하는'이 더 분명해요"
나도 물러나지 않았다. "명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싫어하는'은 '비동의'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지 않나요?"
성폭력예방교육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키워드가 바로 '동의'다. 성적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하며,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행동은 성폭력이라고 가르친다. 엄밀히 말해서 '동의'의 반대말은 '거부'가 아니라 '비동의'인 것이다.
p. 75 대체로 여성인 성교육 강사가 대체로 남성인 가해자의 통념을 수정하거나 잘못을 인정하게 하기는 쉽지 않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당신은 강사니까, 여자니까 내 심정을 모른다'는 태도가 일반적이다. 반면에 남성 집단원 간의 비난이나 지적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더 잘 수용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중략~ 그렇다면 실제로 남자 강사가 재범방지 교육을 진행하면 더 효과적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강사의 성별이 아니라 전문성과 성인지 감수성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p. 78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끼리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할 지 모르겠다. 핵심은 이들이 '똑같은' 범죄자는 아니라는 데 있다. 자신이 저지르는 일에 대해 인지하는 방식도 다르고, 성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도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서로 이야기를 하도록 붙여놓으면 '남자라고 다 똑같지는 않다'는 걸 자각한다. 그렇게 '남자가 다 그렇지'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된다.
p. 79 프로그램 초반에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다. 정장 치마를 입고 참석한 날 주 진행자에게 치마를 입지 말라는 지적을 받았다. 왜 강사인 우리마저 '야하고 짧은 옷차림이 성폭력을 자극하고 유발한다'는 통념에 맞춰야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보조진행자였기에 최대한 협조하는 마음으로 내내 바지를 입고 다녔다. 내가 주 진행자가 된 후엔 성 통념을 다루는 날엔 일부러 하늘거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거나 머리를 묶지 않고 치렁치렁 풀었다.
p. 81 누군가 왜 가해자를 위해 교육하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 대답은 하나다. 바로 '피해자를 위해서'다. 단 한명이라도 교육을 받은 후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피해자도 줄어들 테니까.
p. 118 여자아이도 성욕구가 있으며 자위를 할 수 있다는 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쉽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가 '내 딸아이'라고 생각하면 이중적으로 변한다. 능동적인 성적 주체로 인정하기도 싫으면서, "여자애들은 다르죠. 안기면 착 감기잖아요"같은 말을 하며 자기도 모르게 대상화한다.
남자 아이들이라고 마냥 자유로울까. 적당한 때에 고급 티슈를 건네받는 동시에 '성욕 조절'에 좋다는 축구나 농구를 권유받는다. 운동량이 왕성한 성욕을 뒷받침하는 체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는 이런 '대책'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격렬한 운동이 자위 횟수나 가능성을 줄이고 성욕을 조절하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오히려 아이들은 어른의 이중적인 시선을 눈치채고 자기 욕구를 감추고, 오로지 모른 척해주기만을 바라게 되지 않을까.
p. 134 2차 성징이 시작되면 성적 호기심이 증가하고 '야동'에 관심가는 것은 자연스러우니 호들갑스럽게 말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데엔, '야한 건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 같다. 나도 '야한 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음란물 문제의 핵심은 '누구'의 시선으로,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느냐이다.
p. 140 남성은 거의 모르는 어떤 공포를 여성은 일상적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혼자 사는 여성에게 현관에 남자 신발 한켤레 놔두라고 조언한다든가, 친구가 타고 간 택시 번호를 외워두거나 저장해두는 그런 공포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익숙한 생활 그 자체다.
이런 얘기가 오가면 그럴 수 있겠다며 공감하는 남성이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엔 "남자로 태어난 게 죄냐"고 불쾌해하는 남성이 있다. 강의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화를 내며 항의하는 남성 착석자에겐 "남자에게 최악은 강간범으로 의심받는 불쾌감이지만, 여성에게 최악은 실제로 강간을 당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머리를 식히고 나면 아주 모를 마음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겪지 않을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p. 159 강의를 준비하면서 타인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말을 주욱 떠올려보았다. 된장녀, 김치녀, 맘충, 급식충, 틀딱, 애자... 한가지 특징이 잡혔다. 혐오의 말은 전부 '여성, 미성년자,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정치인을 욕하고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욕하지만, 정치충이나 범죄충이라곤 안한다. 물리적 힘이건 재력이건, 권력을 가진 자들은 혐오로 명명되지 않는다. 혐오의 대상은 언제나 약자다.
p. 161 '대다', '따먹다'는 지극히 일방적인 표현이다. 누군가가 '따먹으려면' '누군가는 '따먹혀야' 가능한 표현이다. 그리고 '따먹힌'쪽은 너무나도 쉽게 '걸레'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빠구리'는 무슨 뜻일까. 어원을 짐작할 수 없어 검색해보니 '덥석'이란 뜻의 일본어가 나왔다. 상대방을 오직 성적 대상으로, 또는 '성기'로만 대하고, 마음만 먹으면 제압할 수 있는 '약자'를 전제한 표현이다. 섹스에 강자-약자라는 권력관계가 생겨버린다. "나 조만간 00이 따먹으려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섹스를 존중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라고 생각할 리 만무하다.
p. 169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비법 같은 것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가해 행동을 하지 않거나 성폭력 피해를 인지하고 그에 대처해나갈 방법은 있다. 그 첫걸음이 성폭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다. ~중략~ 성폭력인지 몰랐다는 가해자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계속 한 발 늦고 있는 건 아닌지 괜스레 조급해진다.
p.171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을 정해보았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또는 요청한 수준 이상으로 아이의 문제에 개입하거나 내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자, 하루 한 번은 아이를 꼭 끌어안고 "네가 일등일 하든 꼴등을 하든, 네가 건강하든 아프든, 행복한 순간이든 슬픈 순간이든 언제나 널 사랑해"하고 속삭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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