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17 문제의식은 역사성에 있는 것이고, 어떤 발언이든 당시의구체적인 상황과 목적, 화자와 청자의 관계성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P. 28 새로운 여성주의 운동이 등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 1990년대의 변화는 아마도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사회운동 조직 구성원 중에 여성 비율이 늘어났다. 둘째, 기존의 주류 사회운동 조직이 이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혼란과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셋째, 제도 학문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모두 페미니즘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넷째, 그 동안 비판되거나 의심받은 적이 없던 '진보운동'이 갖고 있는 가부장적 성격을 비판하는 연구와 발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성과 주류 사회운동의 관계 설정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한 이 비판적 문제의식은, 여성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드러내며 사회운동의 가부장성을 '폭로'하는 발언에서 출발해 점차 그것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줄 사회운동의 이념, 문화, 조직 원리에 따라 체계적으로 재생산되어 온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하는 연구로 발전됐다. 이렇게 복합적으로 변해가는 1990년대의 풍경들 속에서 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제적 현실을 '사회적 모순'으로 인식하면서 어떤 여성들이 사회운동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P. 38 누군가가 설명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자신을 설명하고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시야를 갖는다는 것은 매혹적이다. 즉 "똑똑한 여자애"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인식의 주체, 지식과 앎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기도 한 것이다.
P. 39 '착한 딸'이 되는 것은 운동가가 되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규범이었기 때문에, 운동가가 돼가는 과정은 '딸 됨'의 규범을 비판하고 과거의 자신과 단절하는 과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는 부모의 손에 규율되고 훈육되는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인 시민으로서 판단과 선택의 권한을 갖는다는 자의식이 형성된다.
P. 40 그러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미 개인인 남성은 집단 속에서 개인을 실현할 수 있지만, 개인에 미달하는 존재이자 개인(남성)을 보조하고 위로하는 존재로 정의되어온 여성은 '우리'가 되기 위해 '나(여성)'를 부정해야 하거나 '나(여성)'라는 자의식을 갖는 순간 '우리'에서 추방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P. 41 기존의 여성성을 부정하면서 '운동권'이 된 여성 활동가들은 종종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는 자의식을 가졌다. 이러한 자의식은 물론, 기존의 가부장적 여성성을 불편해하면서 다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그러나 '평범한 여자'와 '특별한 여자'를 나누는 경계는 누구의 시선에 따른 것일까? 기존의 여성성을 부정하는 것이 '보통 여자'와 '특별한 여자'(남자에게 인정받고 남자와 논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여자)의 구분 자체를 문제화하지 못하는 한, 여성 활동가들은 '운동권식' 여자다움이라는 또 다른 규범 앞에서 분열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남성성에 부여된 권력은 흔들리지 않은 채, 남성의 '인정'을 욕망하는 여성들 사이의 비교와 경쟁이 깊어질 뿐인 것이다.
P. 83 민주노총 소속 조직들에서 보이지 않는 '상명하달식' 권위주의가 관철되는 것을 경험한 이야기에서 보듯이, 사회운동 내부의 권위주의는 여성주의적 문제제기 자체를 가로막는 실질적인 장치였다. 1999년에 결성된 여성활동가모임의 원래 명칭에 '권위주의철폐'가 핵심 목표로 명시된 것도, 사회운동 조직 안에서 권위주의가 깊이 체질화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P. 101 여성 활동가들의 '남성화' 전략이 대개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미 주어진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 '남성만큼' 이론을 알고 '남성만큼' 말을 잘하며 '남성만큼' 기술력이 있고 '남성만큼' 투쟁적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성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나면 여성은 아무리 '남성적'이 되어도 결국 남성에 미달한다. 두 번째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남성은 그 사람을 '여성'으로 보며, 여성에게 요구되는 별도의 성별화된 '미덕'과 규범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섹시하면서 동시에 순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 '주부'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좋은 노동력이 아니라고 간주하는 것, '외모에만 신경쓰는 골빈 여자'라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매력적인 성적 대상이기를 바라는 것 등,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듣게 되는 이중 메시지는 수도 없이 많다.
P. 105 학력과 경력이 동등한데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위 파트너의 대우를 받아야 했고, 그런 여성이 유일하게 오를 수 있는 조직 내 최고의 위치는 언제나 넉넉한 가슴으로 조직의 안살림을 관장하며 남성 활동가의 술주정을 받아주는 봉건적인 어머니상의 관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P. 115 남성은 행동하고 여성은 보여진다. 남성은 여성을 바라본다. 여성은 보여지는 자신을 본다. 사진작가이자 비판적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의 이 말은, 시선은 그 자체가 권력관계를 내포하면서 동시에 권력이 작동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무엇보다도 '몸'으로 환원되는데, 이때 '몸'이란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성 사회가 전시하고 동원하고 사용하고 교환하는 몸이다. 여성의 몸이 어떻게 훈육되고 '관리'돼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과 경합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P. 121 왜 비전향 장기수는 '선생님'이고 위안부 피해자는 '할머니'로 부르냐고 물으면서, 좌, 우파를 넘어서는 남성 젠더의 지배 역사 속에서 역사의 주체이자 행위자로 간주되는 남성은 '선생님'이고 (남성) 역사의 피해자로 간주되는 '위안부' 피해 여성은 비정치적 존재로서 '할머니'가 된다고 비판한다. 즉,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투쟁하는 주체로 불리지만 여성은 사적 영역에 속한 가족 구성원으로 보호의 대상이거나(그래서 보호할 남성 주체를 호출하거나), 아니면 분노를 불러 일으키는 희생자로 나타난다(그래서 복수할 남성 주체를 호출한다)
P. 122 '형'이라는 용어는 보통 '학형'의 준말이라고 설명되지만, 실제로 이 말이 사용되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은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불렀지만 남성은 여자 선배를 여전히 '누나'라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볼 때, 여성이라는 성별 차이를 무화시키고 선배 남성과 '남성으로서' 관계 맺고자 하는 남성화 전략의 일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남성 활동가들 사이의 관계가 형과 아우 사이의 남성 동맹을 바탕으로 하는 반면, 여성 활동가들 사이의 관계는 좀처럼 계보가 만들어지지 않고 경쟁하게 되는 것이다. 형과 아우(남성)의 관계와 언니와 동생(여성)의 관계는 같지 않다. 또 '형'으로 불리건 '오빠'로 불리건 그것이 남성이 운동가로서 지니는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며 고민거리가 되지도 않지만, '형'으로 부를 것인가 '오빠'로 부를 것인가하는 문제는 여성에게 중요했고, 언제나 호칭은 고민의 대상이었다.
P. 127 남성 노동자의 파업 투쟁은 아내의 지지와 지원을 받지만, 여성 노동자의 파업 투쟁은 오히려 남편의 '허락'을 얻어야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여성 노동자에게 시민/노동자의 권리보다 아내/어머니/주부의 도리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상징과 언어의 차원에서든 구호와 조직의 차원에서든, 결국 한국의 노동운동은 최근까지도 가부장적 성역할을 구조화하는 가족주의에 도전하지 않아왔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에 공모해온 것이다.
P. 129 남성의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권력을 당연시하는 운동사회의 문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고수해온 노동운동, 여성을 피부양자이자 핍호자로 보면서 남성(남편/아버지)에게 귀속된 존재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보는 통념, 여성은 사적 존재로서 조직 안에서 애정과 보살핌,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등은 모두 이 공/사 이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P. 156 그러나 "아버지의 연장으로는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는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의 말처럼, '남성의 언어'로 남성중심성을 비판하고 여성의 경험을 번역해 설명하는 작업은 여성 활동가들에게만 고된 노동을 부과할 뿐, 이미 남성의 것으로 번역돼버린 문제제기는 남성의 세계관을 보완하고 수정해 지배를 지속시키는 데 이용될 뿐이었다. 결국 여성 활동가들은 구조/일상, 이성/감정을 나누고 위계화하는 이분법 자체를 문제화할 때에만 기존의 언어 균열을 내고 대안적인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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