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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만 리뷰[방구석 추천]/Books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2017.04, 홍승은 저)

by 용가리 통뼈 80 2023. 5. 26.

P. 26 나는 누군가의 삶이 결혼, 이혼, 비혼이라는 언어로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 아빠의 관계를 통해 배웠다. 합리적인 사랑, 마땅히 그래야 하는 책임, 명확한 관계와 같은 확실하다고 '믿는' 것들을 믿지 않는다. 나에게 그것은 마치 출렁이는 파도를 좁은 울타리에 억지로 가두려는 것과 같다. 내가 '엄마'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엄마는 자신의 삶으로 부딪치며 우리 자매에게 가르쳐주었다. 

P. 34 보통의 존재라고 못 박기에 나와 너는 고유하다. 걷는 보폭, 젓가락질하는 손가락 모양, 리듬을 탈 때 끄덕이는 고개의 각도, 드러나지 못한 욕망... 재단할 수 없는 사람들 고유의 빛을 본다. 

P. 43 그렇게 친절한 타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 우리가 서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말,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P. 47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누군가의 구원이 되지는 못하니까. 상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서 영향을 주는 것보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친절한 타인으로 남는 게 더 어렵다. 관계 맺음의 상상력 갖기.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기. 그것이 관심이 아니라 침범이었다는 걸 인정하기. 

P. 54 가장 '사적'이라 여겨져서 알고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문제가 한국사회의 가족 문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비혼'과 더불어 기존에 주어진 가족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은 나에게 가장 필수적인 혁명이었다. 가족 관계의 불평등한 구조가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명절의 변화는 가족 관계 재배치의 시작이었다. 

P. 64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내 삶에 존재했던 수많은 모순이 드러났다. 일상으로 받아들이던 것들을 건드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엄마의 노동은 부잌의 고정된 풍경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이 '뚝딱' 나오는 거라 믿는 우리의 평범한 식사 시간처럼, 뼛속 깊이 새겨진 습관이기 때문에 모두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P. 69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명확한 정답이 있는 공부와 다른, 내가 아는 걸 해체하는 공부였다. 시민단체, 학생 자치 모임, 정당 활동, 독서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내가 알던 직선의 세계를 해체했다. 타자를 만나고 목소리를 듣는 일은 내게 매번 충격과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다. 

P. 71 내가 얼마나 타자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발견하고,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타자의 존재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이다. 시험문제를 푸는 게 아닌, 곁에 있는 타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 귀마개를 꽂는 게 아닌, 나를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가까이에 존재하는 교육을 찾아 우리는 너무 멀이 돌아왔다. 

P. 79 애초에 살아있지 못해서 죽을 수도 없는 삶. 사람뿐 아니라 동물, 자연 등 스스로의 언어를 갖지 못해서 소리없이 사라지는 존재들, 애도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을까. '애도'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도 정치적으로 선별되어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수긍하게 되었다. 그 많은 죽음은 어디로 갔을까.. 

P. 97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심하고 사근사근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내게 주어진 유일한 처방전이었다. " 야 서봐!"라며 치근덕대던 술 취한 남성에게 맞서지 못하고, 모르는 남자에게 갑자기 욕을 들어도 못 들은 척 피하고 '바바리맨'을 보면 도망치고, 함부로 내 몸을 침범하는 남성에게 더 화를 내지 못하고, 데이트폭력을 저질렀던 남자친구에게 더 따지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내가 더 큰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P. 98 여성이라는 한 성별이 '피해자'가 되는 게 자연스럽지 않다는 걸 보이기 위해서라도, 폭력을 위한 폭력이 아닌 공존을 위한 폭력은 필요하다. 어떤 존재도 예비 피해자여서는 안 되므로, 살아있는 존재는 언제 어디서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무거운 진리를 위해서라도... 

P. 104 또 그는 몰랐다. 어떤 부모 자식관계는 남보다 더 아프고 폭력적일 수 있다는 걸, 그런 아픔에 '마땅한 도리'를 들이대는 게 얼마나 섣부른 판단이고 폭력인지 그는 몰랐다. 

P. 111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하는 개개인의 페미니즘이 있으며, 페미니스트'들'은 사안에 따라 협력하거나 투쟁하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정하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페미니스트가 세상의 구원자이거나 천사이거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존재는 아니니까. ... 추신. 혹시 진정한 페미니즘이 있다고 믿는다면 스스로가 진정한 페미니스트의 모델이 되어주길 바란다. 

P. 115 섹스는 함께였지만 임신과 수술, 몸조리, 사회의 시선은 모두 내가 감내해야 했다....임신은 함께했지만 동생의 몸만 불법이 되었다. 

P. 117 낙태는 '그녀'의 책임인가? 한 여성의 임신은 섹스만이 아닌, 수많은 사회적 요건(성교육 부재,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중 잣대, 강간문화 등)과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임신 후 여성의 선택도 사회적 여건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열악한 비혼모 지원, 사회적 편견, 여성 노동의 빈곤화와 보육제도, 교육제도의 위기와 같이 복잡다단한 현실이 교차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의 복잡함은 '선택'이라는 한 단어로 뭉개진다. 

P. 120 현실은 뚜렷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되지 않고 복잡다단하지만, 보물찾기처럼 정답을 찾으려는 문화는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P. 122 " 1960년대 중산층 백인 여성이 집에서 나와 일자리를 갖는 것이 '해방'이었다면, 흑인 여성은 일자리를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저항행위였다. 즉, 모든 '여성'은 동일한 젠더를 경험하지 않는다" -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저자 패트리샤 힐 콜린스 

P. 123 모든 것을 하나로 설명하는 '단순화하기'의 유혹을 뿌리치고 끊임없이 복잡한 것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려는 시도는 어렵더라도 꼭 필요하다.... 확신하려는 유혹 대신 불확실한 것을 받아들이기. 강단에 설 때,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서도 내가 모르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갖기. '알 것 같은 느낌' 에 속지 않는 부지런함도 함께.

P. 140 자라오며 일상적인 공간과 관계(길거리, 하굑, 직장, 술집, 화장실, 노래방, 선후배, 연인 등) 도처에서 성적 대상이 되었는데, 정작 나는 스스로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도 무지하길 강요받았다. 누군가가 욕망하는 대상이 되도록 학습받고 행동해왔으면서, 나는 내 욕망에 얼마나 주체적이었을까. 아니, 온전히 욕망했던 적이 있었나? 내 몸이 관계 맺으며 겪는 일들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었나? 

P. 145 모든 변화의 시작이 그렇듯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먼저 의심해야 한다. 자연스럽다고 해서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익숙해도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P. 204 공적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은 여성에 대한 편견어린 시선과 싸우는 동시에 여성에게 더 엄격하게 세워진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연구활동가 권김현영- 

P. 212 나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수반한다. 나의 게으름은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누리는 권력이다.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노동에 기대어 편리함을 누렸을까. 얼마나 많은 차별 속에서 모른 척 편리함을 누렸을까. 

P. 218 내가 고통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고통을 외면한 희망의 언어보다 고통을 응시하는 정직한 절망의 언어가 나를 살아 있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P. 219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그 비극을 경험하지 않은 '특권'을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하는 배려와 관용, 나는 이 부정의를 참을 수 없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고통, 폭력, 슬픔이 연구되기 어려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고통이 언어화될 때만이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다. 내 고통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인식만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 정희진, <아주 친밀한 폭력> 중에서 - 

P. 242 자신이 언제나 '피해자'라는 인식과 '운동가'라는 정체성을 내려놓고 나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건 무척 어렵다.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여전히 실수하고, 내 모순과 생각없이 뱉은 말과 태도를 두고두고 생각하며 부끄러워 숨고 싶을 때가 많으니까 

P. 253 상대에게 무례하고 무심하게 행동하면서 환대를 바랄 수 있을까. 우리는 무례한 걸 참아가면서 감정노동하기 위해서 까페를 만든 게 아니라, 무례한 세상에서 사소한 것부터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까페를 만들었다. 이곳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P. 253 내가 페미니스트이건 사회운동가이건 나는 모두를 위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모두를 위한다는 건 사실 누구도 위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P. 257 그렇게 외치면서도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사소하지만 거슬리던 의문이 있었어요. 정말 정권 교체만 되면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까,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의 삶은 안정될까. 정말 소녀상 이전을 막고 아베가 사과하고 제대로 배상금을 지급하면, 그러면 조금 더 사회가 정의로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 할머니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여성은 더는 성적 피해자가 안 될까, 그렇게 되면 나는 나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걸까. 

P. 281 나는 '삶의 정치'를 주장한다. 자기 삶으로부터의 고민과 목소리가 없으면 정치 참여도 없다. 나는 여전히 '발화'가 아닌 구체적 삶의 '태도'가 민주주의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배제와 억압을 경험하며, 추상적인 개념을 독점하면서 자의식에 심취한 사람이 '대놓고 나쁜 놈' 보다 더 무섭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